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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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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리

일원상 서원문

관리자 2009.07.31 09:00 조회 수 : 3228

일원상 서원문
김 주원
1. 일원상 서원문의 의의
대산 종법사님은 일원상 서원문의 의의를 밝히시기를 「이 서원문은 심불(心佛)전에 불과를 얻으려는 간절하고도 지극한 원으로써 법계에 서약을 올리는 글이다」고 정전 대의에서 말씀하셨다. 삼세의 모든 불보살들이 불과를 이루신 것은 다 최초의 서원 일념을 쉬지 않고 꾸준히 심공을 쌓은 결과라고 한다. 수행장 있어 원은 종자와 같은 것으로 원이 없이 수행하는 것은 종자를 뿌리지 않고 받을 갈고 김매는 것과 같아 결국 결실을 얻을 수 없다. 널리 보면 세상 사람 모두가 결국은 각자의 원을 따라 업을 짓고 가지각색의 차별 세계에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넓고 크고 좋은 원을 세우는 것은 영생 길을 얻는데 처음이 되고 근본이 되는 중요한 일이다. 대종사께서는 전 인류가 다같이 일원의 진리 속에서 무한한 진급과 은혜를 입어 결국 복혜가 원만한 불보살이 되어 대낙원에서 살기를 염원하시고 그 서원의 종자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일원상 서원문이다. 그러므로 이 서원문은 대종사님의 발원문이고 우리 전 교도의 공동 발원문이며 나아가 전인류의 발원문이다. 이 서원문이 내것이 될 때 비로소 성불의 종자를 얻게 된다. 이 서원이 철저하면 여문 종자가 되어 좋은 싹을 낼 것이나 이 서원이 여물지 못하면 또한 부실한 종자가 되어 싹을 틔우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이 서원문으로 나의 심신이 온통 어려서 대종사님께서 염원하시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되겠다.
2. 일원상 서원문의 내용
일원상 서원문의 내용을 보면 대종사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이렇게 하면 좋으니 이렇게 하기를 원하라 하시는 타의적 서원을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왜 그렇게 서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이유를 먼저 알아서 스스로 그렇게 살기를 염원하는 자의적 서원이 되도록 일러주신 것 같다. 그것은 일원상 서원문의 구조가 먼저 진리를 우리에게 일러 주시고 너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생활의 원리가 이렇게 되어 있으니 이러한 원리를 알아 잘 살고자 한다면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이 아니냐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개략적으로 살펴본다면 「일원은 ~무량세계를 전개하였나니」까지는 우주의 실상과 생활의 원리를 밝혀주신 대목으로 생각되고「우리 어리석은 ~지성으로 하여」까지는 그러한 진리에 바탕한 생활을 말씀하신 대목으로 생각되며 「진급이 되고 ~서원함」까지는 우리의 생활이 그러한 진리에 완전히 합치되어지도록까지 끊임없이 수행 정진하기를 염원하는 대목으로 생각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이 서원문을 대할 때에 무슨 주문처럼, 일심으로 외우면 큰 위력이 오는 것같이 대할 것이 아니라 서원문에 밝혀주신 그 진리 내용을 잘 파악하여 알아야 할 것이며, 안 뒤에는 그 내용을 표준삼아 우리의 생활이 그에 일치도도록 수행 정진하여야 할 것이며, 수행 정진하되 구경에 이르도록 까지 쉬임없이 나아가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적공하면서 더욱 큰 원력을 뭉치고 또 뭉쳐 나가야 하리라 생각한다.
「일원은 ~무량세계를 전개하였나니」
대종사께서 우주의 원리를 대소유무로써 우리에게 일러 주셨다. 대산 종법사님께서는 지금까지 성리를 이처럼 간명하고 원만하게 표준 잡아 주신 성자는 일찍이 없었다고까지 말씀하신 바 있다. 서원문의 첫 대목은 바로 그 대소유무의 이치를 일러 주신 것이 아닌가 한다.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인 바」는 성리의 대자리를 일어 주신 것이요,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이요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으로」는 소자리를, 유상과 무상의 이치는 유무를 밝혀 주신 것이 아닌가 싶다. 때문에 간단한 몇말씀이지만 서원문의 첫 대목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진리에 대한 원만한 표준을 얻은 것이며 곧 견성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또한 대산 종법사님께서는 과거 불가의 사반야지(四般若智)와 연결시켜 첫대목은 대원경지(대원경지) 둘째 대목은 평등성지(평등성지) 셋째 대목은 묘관찰지(묘관찰지)로 밝혀 주셨다. 그런데 이러한 진리 내용을 밖에서 찾으면 나하고는 거리가 멀어지고 수행에서 멀어진다. 그러므로 성리의 세계와 내가 가까워지는 방법은 그러한 원리를 내 마음에서 찾아 회광 반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언어도단의 입정처요 유무 초월의 생사문도 이 마음에서 찾아보고 본원과 성품 자리도 이 마음에서 찾아보고 유상과 무상의 이치도 이 마음에서 찾아보면 대원경지 평등성지 묘관찰지를 얻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어리석은 ~ 체받아서」
우리는 그 진리를 알든지 모르든지 그러한 진리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깨친 분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진리를 모르고 위배해서 받는 고통의 모습은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모시고 이 진리대로 살아서 한량없는 복락을 수용하기를 염원하시는 뜻이 이 대목에 들어 있다. 이 진리를 체받기로 하면 알아야 할 것이요, 알기로 하면 먼저 믿어야 할 것이다. 아직 바른 지각이 트이지 못한 철없는 우리 중생은 부처님의 말씀대로 믿고 따라서 그 진리를 체받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심신을 ~ 지성으로 하여」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일어 주신 대목이다. 결국 진리를 알고 보면 모든 죄복 고락이 내가 지어 받는 것이며 이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동 일정에 이 심신을 잘 사용하는 것이 최고의 묘법이 되며 여기에 모든 공부가 다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대산 종법사님께서는 불교의 팔만 장경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일체가 다 마음의 짓는 바라」는 한구에 돌아가고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하나로 표현하면 「마음을 잘 쓰라」하신 것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삼세의 불보살들이 다른 분이 아니라 이 마음의 근본을 깨쳐서 자유를 얻어 마음을 잘 사용하신 분에 다름이 없다. 대종사님께서도 서원문에 진리를 체받아 사는 최고의 길을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고, 사리를 원만하게 알고,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하라는 세가지 강령으로 말씀하신다. 늘 살펴서 우리의 마음이 본래의 온전한 자리를 지니도록 잘 수호하고 무엇이 복이 되고 무엇이 죄가 되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위인지 잘 판단하여 바른 길을 얻고 진리의 길 그대로 몸과 마음을 써서 실다운 효과를 얻으라는 것이 진리를 알아 사는 결론이다. 진리는 고금이 따로 없고 동서가 따로 없기 때문에 어느 곳 어느 때나 그대로 틈없이 작용되고 있다. 그러니 그 진리를 체받는 공부인들 어느 때라 해서 쉬며 어느 곳이라 해서 놓을 수 있겠는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늘 쉬임없이 정성으로 해 나가야 할 공부가 바로 진리 공부 즉 마음 공부이다. 바빠도 해야 되고 여유가 있어도 해야 되며 어려워도 해야 되고 쉬워도 해야 되며 주위의 여건이 나빠도 해야 되고 여건이 좋아도 해야 된다. 이 공부는 쉴 수도, 쉬어 줄 수도 없는 공부임을 알아서 지극한 정성으로 끊임없는 공을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
「진급이 되고 ~ 서원함」
이와 같이 진리를 알고 믿어 체받고 그대로 수행하면 안으로 차츰 중생의 탈을 벗고 불보살의 세계로 진급이 되어질 것이고 밖으로 사은의 무궁한 은혜를 더욱 더 입게 될 것이다. 그러니 늘 마음을 챙겨서 순간 순간이 진급이 되고 은혜를 입는 시간은 될지언정 방심하고 남에게 해를 입혀서 스스로 강급이 되고 사은의 해독을 입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지며 살피고 또 살펴서 계속해 나가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그러한 수행의 공덕이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진리 전체의 위력을 남음없이 얻어 시방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복이 족족하여 조금도 부족함과 구애가 없는 원만한 생활을 하며 또한 심공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진공 묘유한 자성불에 합치하여 동정간에 일심을 여의지 않는 여래의 생활로 불과를 얻도록 까지 대원력을 뭉쳐 나가라는 간절한 대목이다. 모든 인류가 사람의 몸을 받아 살아 나갈 때 이 길을 놓고 다시 더 무슨 인생의 정로가 있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대산 종사님께서는 「사가 없으면 일원의 위력을 얻고 망념이 쉬면 체성에 합한다」는 한 말씀으로 서원문의 공부길을 뭉쳐 주셨다. 우리는 이 공부길로 반드시 「성불 제중」「제생 의세」의 대업을 완수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