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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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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리

일원상 법어

관리자 2009.07.31 09:00 조회 수 : 3114

일원상 법어
김 주 원
일원상의 진리를 밝혀 주시고 다시 그 믿는 길을 일어 주시며 닦는 방법을 인도하시고, 이러한 믿고 닦음이 근본에는 각자의 서원으로 비롯하여 구경에 이를 수 있음을 아시고, 우리 모두에게 성불 제중하는 대서원을 세우게 해주시고, 다시 일원상 법어로써 진리를 깨쳐 살아가는 활불(佛)의 표준을 잡아 주심은 대종사님의 대원력과 자비가 아니신가 한다. 과연 진리를 깨달아 진리적 생활을 하는 도인들은 어떤 분일까 혹 쉽게 알 것도 같고, 또는 도인이라 하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별 세계의 인물 같이 생각되어 모를 것도 같다. 오히려 세태의 인심은 도인이라 하면 사람의 범상한 능력으로써는 할 수 없는 기이한 행적을 나투고 그러한 견해를 나타내면 그 사람을 큰 능력있는 도인으로 추종하고 있지는 않는지. 이러한 점에 대해서 대종사님께서는 이 일원상 법어를 통해서 분명한 해답과 길을 제시하고 계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돌이켜 생각하면 자신 스스로도 본인의 견성 여부와 솔성 여부를 판단할 때에 이 법어에 비춰서 보면 스스로의 정도를 분별할 수 있지 않을 까 한다. 또는 설사 원만한 견성을 다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이 법어에 밝혀주신 마음의 표준을 새겨서 능히 실천에 옮기면 그 분은 곧 깨친 분으로 우리는 인증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깨치는 목적은 진리를 알아서 진리적 생활을 하자는 데에 그 구경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앎은 좀 부족할지라도 가르쳐주신 길을 굳게 믿어 실행해 간다면 곧 깨친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알고 실행이 없는 사람보다 낫다고 하겠다. 그르므로 우리는 이 법어를 대할 때에 그 뜻의 본의를 확실히 깨쳐 알기에도 노력해야 되겠지마는 그와 아울러 설사 아는 것은 아직 미진하다 할지라도 가르쳐주신 표준을 마음에 새기고 마음 쓰는 길을 삼아 반조하고 실천해 나가는 데에 더 큰 공을 들이면 더욱 빠른 공부가 성취되지 않을 까 한다.
「이 원상의 진리를 각하면 시방삼계가 다 오가의 소유인줄을 알며」
일원상으로 표현해주신 참 일원의 원리를 깨닫고 보면 우주 안의 모든 것이 다 나의 소유인 줄을 안다는 말씀으로 우주를 한 집 삼는 큰 마음을 일러 주신 것이다. 우리가 영생의 이치만 믿는다 해도 무엇을 영원한 내 것이라 정할 것이 있으며 또 무엇을 나와 관계없는 것이라고 놓아 버릴 수 있는가 알고 보면 이 우주는 내가 영생 영겁을 살아 나갈 나의 본 집이 아닌가. 또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대종사님께서는 사은으로써 우리에게 쉽게 일러주셨듯이 우주 안의 모든 것은 다 나의 생명을 보전시키고 장양시키며 지켜주는 곧 나의 생명의 원천이니, 그것 없이는 내가 없다면 그것이 곧 내가 아닌가 한다. 옛날 어느 스님이 오는 사람마다 내 고향에서 온 사람이니 잘 해 주어 보내라 하셧다는 말처럼 현실의 조그마한 소유에 국집되어 본래의 큰 집을 잃어버리지 말고 하나의 큰 집을 발견하여 하나의 큰 살림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 우주 만물의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을 알며」
이 몸이 하나라 하는 것은 육근 이 각각 분명히 있건마는 한 몸에 의지하여 한 기운으로 연하여 있으므로 하나라 하듯이 우주 안의 만물도 언뜻 보기에는 각각 독립된 별개의 것처럼 보이나 기실 알고 보면 한 하늘 한 땅 위에 한 기운으로 연해 있는 한 몸인 줄을 분명히 알아, 남을 미워하고 해롭게 함이 곧 자신은 미워하고 해롭게 하는 것이니 큰 공심과 큰 자비의 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제불 조사와 범부 중생의 성품인 줄을 알며」
모든 부처님과 일체 중생의 근본부터 다른 것이 아니요, 오직 수도하여 본래의 성품을 회복한 이와 그렇지 못한 차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성품을 오득하여 원만한 인격을 이루도록 큰 서원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는 생노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생사가 거래임을 알아 해탈하자는 것이며,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인과는 주고 받는 것임을 알아 달게 받고 늘 은혜만을 심자는 것이며,
「또는 원만구족한 것이며 지공무사한 것인 둘을 알리로다.」
우리의 성품이 본래의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함을 알아 원만한 마음의 표준을 얻자는 것이다.
「이 원상은 ~ 지공무사한 것이로다.」
이와 같이 일원의 원만한 진리를 깨쳐서 시방오가의 큰 사상과 사생 일신(四生一身)의 큰 자비와 범성일여(凡聖一妊)의 대정진과 생사 해탈과 인과 해결의 큰 길과 원만 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성품의 표준을 잡아서 눈 귀 코 입 몸 마음을 사용할 때 진리 그대로 나투어 살자는 것이다.
첫째는 눈을 사용할 때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사용하자는 것이니,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볼 때 장점까지 같이 보고, 다른 사람의 그름을 볼 때 나의 그름까지 같이 살피며 형상있는 세계를 볼 때 그 형상 없는 세계까지 같이 보고, 부분을 볼 때 전체를 같이 살피며, 원인을 볼 때 결과를 보고 결과를 볼 때 원인을 같이 살펴서 어디 하나에 국집되거나 편착되거나 가르지 아니하고 전체를 다 보며 치우침 없이 바르게 보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공부를 하면 진리의 두렷한 눈을 가지게 될 것이다.
둘째는 귀를 사용할 때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사용하자는 것이니,
가까운 소리와 먼 데 소리를 같이 잘 들으며, 귀에 좋은 소리와 거슬리는 충언(忠言)을 같이 잘 들으며, 한 쪽의 말만 듣지 아니하고 양쪽의 말을 고르게 잘 들으며, 소리 있는 소리와 소리없는 소리까지도 들을 줄 알아서 모두의 소리를 평등하게 고르게 널리 잘 들어서 치우침 없이 원만하고 바르게 듣자는 것이니 이와 같은 공부를 하면 진리의 두렷한 귀를 얻게 될 것이다.
셋째는 코를 사용할 때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사용하자는 것이니,
내가 좋아하는 냄새와 싫어하는 냄새에 끌림없이 고르게 맡고 바르게 맡으며 나아가 냄새있는 냄새와 냄새없는 냄새까지도 같이 잘 맡아서 모든 냄새를 원만히 맡는 공부를 하면 진리의 두렷한 코를 얻게 될 것이다.
넷째는 입을 사용할 때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사용하자는 것이니,
계문에 금하신 악구, 타인과 양인 병설, 망어, 꾸미는 말, 한입으로 두말하는 것 등의 사사로운 말은 일체 놓아버리고 오직 남의 전로를 열어주고 덕이 미쳐가며 세상을 유익주고 만대의 법이 되는 말을 하여 천하가 다 들어도 좋은 말은 하고 삿된 말은 하지 않으며 한걸음 나아가 능히 말할 때에 말하고 능히 거둘 때에 거둬서 유언(有言)무언(無言)이 다 법도에 맞게 하는 공부를 하면 진리의 두렷한 입을 얻게 될 것이다.
다섯째는 몸을 사용할 때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사용하자는 것이니,
이 몸은 곧 사은의 공물(公物)이요, 색신여래(色身妊來)라 하셨으니 오직 공(公)을 표준하고 법(法)을 표준해서 몸의 진퇴와 동정을 고르며 철없는 욕심의 지배아래 몸을 두지 말고 큰 서원 아래 예로써 길들이며 자연 진리의 원만한 몸을 얻게 될 것이다.
여섯째는 마음을 사용할 때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사용하자는 것이니,
이 모든 육근의 작용이 나누면 여섯이요, 합하면 결국 한 마음의 작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사용하는데에 적공해 나가야 할 것인바 마음에 사상(四相)과 법상 비법상마저도 놓아 버린 지극히 청정한 자리를 얻어서 밑었는 데 까지 깊으며 위없는 데까지 높고 가없는 데까지 넓어서 지극히 광대하고 심원하며 공변된 마음으로 모두를 다 싸주고 다 안아주고 다 살려주고 다 화하는 큰 마음을 사용하는 공부를 하면 진리의 두렷한 마음을 얻어 일원의 심인(心印)을 얻게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은 표준이 곧 견성자의 길이요, 솔성자의 길이며 달도자(達道者)의 길일 것이니 우리는 이 바르고 원만한 표준으로 큰 회상, 큰 법, 큰 스승님 아래 큰 공부를 하여 큰 인격을 이루어 세상에 큰 공덕을 나툴 수 있도록 적공하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