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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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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리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관리자 2009.07.31 09:00 조회 수 : 3677

●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대종사 당시의 시국을 살펴 보시사 그 지도 강령을 표어로써 정하시기를 “물질이 개벽(開闢)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하시니라.<대종경 서품 4장>

이 법문에는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님의 개교 경륜이 담겨 있습니다.

대산 종사님께서 개교의 표어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 물질 개벽 = 지벽(地闢) = 과학문명, 물질문명 = 빈곤, 질병을 물리치고 의식주 생활을 개선하자 = 일생(一生)의 신낙원(身樂園)

* 정신 개벽 = 천개(失開) = 도학문명, 정신문명 = 삼학팔조로 마음을 개조하고 사은사요로 세상을 건지자 = 영생(永生)의 심낙원(心樂園)이라 하셨습니다.

이 개교 표어는 정전 ‘개교의 동기’에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일원상 진리를 깨치시고 우주(삼라만상)를 향해 하신 말씀이 <대종경 서품 1장> 말씀이라면, 세상을 보시고 하신 말씀은 <대종경 서품 4장> ‘개교 표어’ 말씀입니다.

개교의 동기의 요지는 사람이 자신이 편리하게 활용하면서 살고자 만든 물질문명에 도리어 구속되어 사는 ‘물질의 노예 생활’을 하는데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노예 생활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자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개인은 지극히 원만한 인격(佛)을 이루고 세상은 광대 무량한 낙원 세상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대종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종교의 참 뜻은 “세상을 바르게 하고 생령을 이롭게 하는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질문명의 혜택으로 몸은 날로 편안해지는데 오히려 마음은 또는 정신은 어떻습니까 물질문명에 구속되어 예속된 생활은 하지 않습니까 내가 많이 갖고 살면 풍요로움이 있지만 그것은 자칫 심한 애착으로 비화될 수 있고 결국 나를 옥죄는 ‘창살 없는 감옥’ 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가두는 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지어서 구속받는 것

예를 들어 TV 프로그램이 마감될 때까지 시청해야 잠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TV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뿐 아닙니다. 물질문명을 접하고 살면서 각자에게 젖어 들어 있는 습관이나 업력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돈 때문에 가까웠던 친구를 멀리하거나 심지어 천륜인 부모 형제의 인연까지도 끊고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물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합니다.

이렇게 내 업력과 습관과 애착과 탐착에 스스로 묶여 살며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생활을 ‘물질의 노예 생활’이라 합니다.

개벽 시대란 바로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을 말합니다. 과거 선천(先失) 시대 즉 온갖 차별이 난무하던 시대에는 힘 있는 강자(强者)가 있어서 차별하고 억압하고 구속하여 노예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후천(後失)시대 즉 물질이 풍부하여 선천시대보다는 물질의 은혜를 받으며 살아갈 뿐 아니라 선천시대에 빚어진 차별이 극복되어 평등생활이 상당히 보장되는 시대에는 부분적으로 선천 시대와 같은 차별 구도가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노예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사람이 사용해야 할 물질(또는 물질문명)이 나를 구속하는 주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나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마음의 힘이 없으면 파란고해(波瀾苦浿)에서 살고 힘이 있으면 극락 생활을 하고 낙원 세상에서 삽니다.

마음을 멈추고 내가 무엇에 구속되어 살아가는가 살펴봅시다. 스스로 고삐를 풀어야 합니다. 나를 구속한 것도 나 자신이고 나를 풀어 주는 것도 나 자신입니다. 나를 자유롭게 하고 물질을 마음껏 선용(善用)하게 하는 것도 나 자신입니다.

원만한 종교 생활이란 바로 신앙과 수행과 마음공부를 같이 하는 생활입니다. 원만한 종교의 신자란 바로 이런 생활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입니다. 원만한 인격을 이루는 것이 곧 성불(成佛)이고, 가정, 이웃,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는 일이 곧 제중(濟衆)입니다.

우리 스스로 묶은 고삐가 있다면 그 고삐를 풀고, 족쇄가 있다면 족쇄를 풀고, 감옥에 갇혀 있다면 감옥을 벗어나고, 짐을 지고 있다면 짐을 벗어야 합니다. 그 당사자,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를 봅니다. 저 중천(中失)에 떠 있는 해는 어느 누구에게든 차별 없이 떠 있습니다. 문을 열면 햇빛이 들어옵니다. 누구나 문을 연 만큼 햇빛의 은혜를 입습니다. 햇빛이 안 들어온다고 탓하지 말고 문을 열어야 합니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열면 법신불 사은님의 은혜를 입고(햇빛을 받고), 마음의 문을 닫으면 닫은 만큼 그 은혜를 못 받습니다. 문을 못 여는 것은 습관과 업력에 끌려 못 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한 ‘참 나’가 아닌데, 내 영생을 책임지고 자유스럽게 할 ‘나’인 줄 알고 사는 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다시 한번 개벽(開闢)의 의미를 깊게 새겨 봅니다.

한 뼘 쯤 열어 놓은 미닫이 문 사이로 바깥 세상이 빼꼼하게 보입니다.

이 문을 통해서 내 눈이 볼 수 있는 세계가 곧 세상의 전부일까요

그 정도 밖에 못보는 것은 내 눈이 문제입니까

아니면 한 뼘 정도 열린 미닫이 문이 문제입니까

그 정도 밖에 안보이는 저 바깥 세상이 탓입니까

세상은 내 마음이 열린 만큼 수용하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의 목적을 일러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고 합니다. 깨달음을 구하고 중생을 가르치는 일이 수레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깨달음을 구하면서 사람들과의 삶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대종사께서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인 물질이 개벽되는 시대에 정신을 개벽하는 깨달음의 길을 가도록 가르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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