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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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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의 향기

유는 무로 무는 유로 -권도갑 교무님-

관리자 2009.07.31 09:00 조회 수 : 2846

이 말씀은 대종사님 열반 게송의 첫 귀절이다. 요즈음 이 말씀이 가슴 사무치게 젖어온다. 그렇다 일체는 있음이 있고 함께 없음이 있다. 이것 어느 하나에도 집착할 때 우리는 진리를 보지 못한다. 유의 뿌리는 무이다. 그리고 무는 다시 유로 돌아간다. 이 둘은 서로 나눌 수가 없다. 유 하나로 존재 할 수 없으며 무 하나로 실재 할 수 없다. 유속에 무가 있고 무속에 유가 있다. 유가 곧 무이며 유가 무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유와 무는 하나인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의 분별심을 하나로 만나게 하자. 먼저 나와 너를 살펴보자. 나의 뿌리는 너이다. 또한 너는 언제나 나로 돌아온다. 이 둘은 서로 나눌 수 없다. 이를 나누면 분별이 되고 여기에서 갈등과 반목과 아픔이 찾아온다. 너와 나는 하나이다. 나 속에 너가 있고 너 속에 내가 있다. 너를 나처럼 귀하게 여기고 나를 너처럼 존경 할 때 여기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는다.

선과 악을 살펴보자. 선의 뿌리는 악이다. 그리고 악은 언제나 선으로 돌아온다. 악을 경험하면 할수록 선이 소중해 진다. 이 둘은 서로 나눌 수 없다. 이를 나누면 분별이 되어 여기에서 선에 집착하고 악을 미워하게 된다. 그러면 선은 멀어지고 악은 가까이 하게 된다. 선과 악은 하나이다. 선 속에 악이 있고 악 속에는 언제나 선이 갊아 있다. 이를 하나로 볼 때 우리는 지선(至善)을 만난다. 지선에서는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니다. 그러면서 능히 선하고 악한 것이다.

다음엔 고와 낙을 살펴보자. 고의 뿌리는 낙이다. 그리고 낙은 항상 고를 부른다. 이 둘은 나눌 수가 없다. 이를 나누면 낙에 집착하고 고를 싫어한다. 그러면 늘 낙은 없고 고만이 찾아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고속에서 낙을 발견하고 낙 속에서 고를 볼 수 있으면 극락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극락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고도 아니요 낙도 아니다. 그러면서 능히 고이면서 낙인 것이다.

굳은 분별과 집착을 놓으면 나의 사고가 유연해 진다. 무엇을 절대 고집하며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무엇엔가 묶여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