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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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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의 향기

인과는 행위가 아니다. -원교선 교무님-

관리자 2009.08.03 09:00 조회 수 : 2955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면, 가만히 있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며, 빚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잠시도 쉬지 않고 일속에 묻혀 살며 마음 편한 날이 없을 것이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 삶이 좋아서 부지런히 즐기는 것과 놀고 있으면 빚지고 복을 까먹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전자는 자신과 세상의 존재를 긍정하고 있고 후자는 이들을 부정할 때 나타나는 반응이다.

행복과 성공적인 삶은 내가 하는 일(행위)에 달렸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특히 수행자는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업적과 일속에 묻혀서 사람들을 어렵고 힘들게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목표가 끝나면 또 하나의 업적을 내세워서 쉬지 말고 일 하라고 독려한다. 계속 복을 지어라고 설득할 것이다.

인과는 행위가 아니고 마음먹기이다. 왜 선행을 하려고 하는가 자성에서는 내가 선행을 하든 아니든 나의 가치는 변함없이 존귀하다. 규칙과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을까 걱정이 되어서 지킨다면, 나는 늘 여기에 묶여있게 된다.

복을 짓지 않으면 빚진 사람이 될까 두려워서 짓는다면 자성을 떠난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사람은 근본적으로 마음의 밑바탕에 나는 못나고 부족하며 복이 없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그 마음이 원인(因)이 되어서 못나고 복이 없는 삶(果)을 살게 된다. 그리고 한가하고 여유롭게 산다는 것은 죄이며, 부지런히 선행을 쌓고 복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삶의 목표는 행복이다. 나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행위가 아니고 존재하는 체험(깨달음)을 나누도록 해야 한다. 무엇인가 만들려는 행위는 욕심의 한 형태이고 존재는 무욕의 경지에 이른다.

우리 주변의 많은 종교인들이 어디에 빠져 있는지 살펴보자. 행위의 양을 따져본다면 큰 자선단체나 정치가와 대기업이 하는 일과 비교할 수 없다. 성숙한 대중들은 이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 한다. 천국과 낙원 마져도 다시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대종사님은 모든 존재(천지만물 허공법계)가 그대로 부처 아님이 없다고 하셨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을 기쁘게 수용하고 나누면 된다.

이제 숨을 돌리고 쉬면서(존재하면서) 이미 주어진 풍요로운 축복들을 즐기고 이들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앞만 보면서 허겁지겁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