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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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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리

일원상의 신앙

관리자 2009.07.31 09:00 조회 수 : 2704

일원상의 신앙
김 주 원
1. 신앙의 특징
일원상의 신앙을 보면 일원상의 진리를 밝혀 주신 내용 전체에 하나 하나 「믿으며」를 붙여 주신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대종사님께서는 신앙에 있어서 조금도 미신이나 방편을 쓰지 않으시고 곧바로 누구나 진리를 사실 그대로 믿어 나가도록 밝혀 주셨다는 점이다. 종래의 신앙 형태를 본 성자들이 다 그 진리 자리는 밝혔으면서도 신앙 형태에 있어서는 진리를 의인화하였기 때문에 인격적 신앙으로 많이 기울었고 또 진리 당체의 신앙보다는 교조를 중심한 개인 인격 신앙에 치우친 면이 있었다.
정산 종사께서는 과거에는 인지가 미개하여 어른의 이름을 빙자하여 타일렀으나 앞으로는 인지가 훨씬 개명되는지라 합리와 순리로 타일러야 한다고 진리 신앙의 당위성을 말씀하셨거니와 대종사님께서도 기념상은 혹 조성할 수 있어도 신앙의 대상으로 하지는 못한다고 분명히 일러 주신데서 오는 시대의 신앙관을 엿볼 수 있다. 근자에 혹 일부에서 법신불 일원상의 신앙에 인격성이 가미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것은 대종사님의 신앙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본인은 생각한다. 지금은 조금 어려운 듯하고 대중이 널리 이해하지 못하는 듯 싶어도 시대가 갈수록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 신앙에 전 인류가 귀의하고 인생의 바른 길을 열어가는 정신의 힘을 얻으리라 믿는다.
2. 신앙의 내용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여 일원상이 상징하는 일원의 진리 내용을 그대로 믿어 인생의 바른 지표로 삼는 것이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원상의 진리를 우주 만유의 본원으로 믿으며」
법신불 일원상으로 상징하고 있는 그 진리가 우주 만유의 본원임을 믿는 것으로 하늘과 땅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근본 일원의 한 진리에 근본해 있고 그 진리의 힘으로 생성 화육됨을 굳게 믿음에 따라 모두가 진리요 전체가 한울안 한이치라는 일원주의의 큰 사상이 배태되고 큰집 큰 살림을 하는 인격의 기초가 마련될 것이다.
「제불 제성의 심인으로 믿으며」
이 진리가 모든 부처님과 성자들의 깨치신 자리임을 굳게 믿어 종교간의 울을 트고 모든 성자를 같이 받들며 서로 넘나들어 함께 인류의 정신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국트인 종교 신자가 될 것이다.
「일체 중생의 본성으로 믿으며」
이 진리가 곧 모든 중생들의 본래 성품임을 굳게 믿음에 따라 모두를 평등하게 대할 수 있는 자세가 확립되고 자신의 인격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며 수행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대소 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로 믿으며 생멸 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로 믿으며 선악 업보가 끊어진 자리로 믿으며 언어 명상이 돈공한 자리로 믿으며」
이 진리는 근본 바탕이 텅 비어서 일호의 상이 없는지라 그 자리에는 대소 유무에 대한 분별도, 생멸 거래에 대한 변화도, 선과 악의 짓는 바에 따라 죄복 인과의 보응이 있다는 것도, 모든 사물을 따라 분별해서 알아내는 일체의 언어와 명상도 다 비어버린 절대 진공의 자리로 굳게 믿음에 따라 우주의 차별 현상에 대한 분별 식심이나 자연과 인생의 변화에 따른 무상함이나 죄복 인과에 따른 괴로움과 즐거움이나 일용 사물을 접응할 때 일어나는 차별심 등이 자연히 비어지고 담박해져서 생멸이 없고 고락과 증애와 차별을 떠난 절대의 진경 자리에 마음이 안주해져서 차츰 극락을 수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없는 자리에서 공적 영지의 광명을 따라 대소 유무에 분별이 나타나는 것을 믿으며 선악 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는 것을 믿으며 언어 명상이 완연하여 시방 삼계가 장중에 한 구슬같이 드러나는 것을 믿으며」
진리의 당체는 일체가 텅 비어버린 절대의 진공 자리인데 그 빈 가운데에 신령스럽게 아는 광명이 있어서 그 광명을 따라 본체와 현상과 있고 없음의 변화에 대한 분별이 역력히 나타나며 그에 따라 모든 생령들의 심신 동작에 따라 호리도 틀림없이 선악 죄복의 보응이 있게 되며 형형 색색으로 삼연히 벌여 있는 모든 차별상에 대하여 먼지 하나라도 어김없이 밝게 나타나는 것이 마치 손바닥 위에 구슬 보듯이 조금도 오착됨이 없음을 굳게 믿음에 따라 자연히 속일 수도 어길 수도 피할 수도 숨을 수도 없는 진리의 밝은 광명을 두려워하여 심신 동작을 경건히 하며 그 광명이 시방에 통철해 있음을 알아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진리를 모시고 받들며 매사에 접응하는 일체 사물을 함부로 하지 않게 되는 경건한 자세가 자리하게 될 것이다. 또 이러한 광명을 믿음으로 해서 무기공에 떨어지지 아니하게 될 것이고 밝고 싱싱한 정신 기운을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며 또 이 광명을 믿음으로 해서 시공을 초월하여 심고와 기도 등의 진리 불공으로 위력얻음을 확신하게 될 것이며 보지 않고 듣지 않는다 하여 다른 사람의 말을 함부로 하거나 마음을 함부로 사용하는 등의 어리석은 행동을 아니하게 될 것이다. 또한 신앙이 깊어질수록 차츰 자신에 갊아 있는 반야지를 솟게 하는데 훨씬 빠른 정진이 이루어져 진리를 대각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진공 묘유의 조화는 우주 만유를 통하여 무시 광겁에 은현 자재함을 믿는 것이 곧 일원상의 신앙이니라」
또한 텅 빈 가운데 묘하게 있어지는 진리의 조화가 우주 안의 모든 것을 통해서 영겁에서 영겁으로 찰라도 쉬임 없이 숨과 나타남을 걸림 없이 이루고 있음을 굳게 믿음에 따라 우주 안의 개개 물물이 모두 나에게 죄복을 줄 권능이 있는 부처(진리의 조화)로 알아지고 모셔지게 되며 따라서 늘 당하는 일마다 좋은 인(因)을 심어 복락의 결과만을 장만하도록 노력하게 될 것이며 또한 숨고 나타나고, 나타나고 숨는 진리의 조화를 믿음으로써 현실의 고정적인 일면에 착심을 두지 아니하고 늘 다음을 준비하는 여유와 해탈을 얻을 것이다. 또한 무시 광겁에 은현 자재하는 진리를 믿게 될 때 우리는 영생 문제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고 멀고 심원한 인생의 안목과 유장하고 넉넉한 생활 자세를 갖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몰아 말하자면 일원상의 신앙은 진리를 사실 그대로 믿어 진리적 생활을 하자는 것이니 깨치신 성자에 의지하여 어리석은 중생도 곧 성리의 세계 즉 부처님의 세계에 살도록 바르고 빠른 길을 안내해 주신 것이 일원상의 신앙이 아닌가 한다.
3. 일원상의 신앙과 사은(四)
이상에서 밝혀 주신 것처럼 나와 더불어 우주 만유가 다 그 근본을 살펴보자면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심행처(心行處)가 멸한 절대의 진공 자리에 바탕해 있으면서 나와 더불어 우주 만유가 또한 시방세계에 통철해 있는 광명과 무시 광겁에 은현 자재하는 묘유의 조화가 갊아 있음을 믿는 것이 일원상의 신앙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진리적 신앙인데 이러한 신앙을 어떻게 하면 모든 중생이 쉽게 생활에서 실행하여 바로 진실한 부처님의 삶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염원하시고 내주신 방법이 바로 사은이다. 진리의 체성, 광명, 조화가 그대로 갊아 있는 우주 만유 전체를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네가지 은혜로 구분하여 진리의 위력을 얻을 수 있도록 보은의 길을 일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일원상 신앙의 길이 여러 가지로 나타낼 수 있겠으나 대종사님께서는 가장 원만하고 광대하고 바르고 빠른 진리 신앙의 길로 이 사은을 우리에게 일러 주셨으니 사은은 진리 신앙의 대도요 정도라 하겠다. 때문에 교법의 총설에서도 이 사은을 신앙의 강령으로 우리에게 일러 주셨으니 일원상 신앙의 원리는 진리 신앙의 내용에서, 그 구체적 실천 방법은 사은에서 찾되 사은이 곧 일원상 신앙이요 일원상 신앙의 가장 원만한 방법이 사은임을 알아 우리는 사은에 대한 보은으로써 일원상 신앙을 잘하여 진리의 전체 위력을 남음 없이 얻어야 하겠다.
4. 처처불상 사사불공
또한 다시 사은 신앙을 요약하여 나타내 주신 것이 「곳곳이 부처님이니 일마다 불공하라」는 표어다. 이해하기도 어려운 현묘한 그 진리에 바탕하여 누구나 쉽게 진리를 생활하도록 일러주신 대법문이다. 우리는 늘 당하는 모든 것이 부처임을 꼭 믿고 알아서 그 일 그 일에 감사 불공하는 생활로 무궁한 복록의 주인공이 되도록 진리적 신앙 생활에 정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