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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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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리

사요

관리자 2009.07.31 09:00 조회 수 : 2870

사요
김 주 원
■ 사요란 무엇인가
사요는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교육 공도자숭배의 네가지로 사은과 더불어 우리 인생으로서 마땅히 실행해야 할 인도상의 요긴한 법이다.
대종사님께서는 진리를 대각하시고 이 세상을 관찰하실 때에 근본적으로 시운이 돌고 돌아 과거 선천시대가 가고 새로운 후천도수가 시작됨을 살피시고, 그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법을 제정하실 때에 이 사회가 과거 선천시대의 불합리한 모든 형식적 차별제도로 인하여 강약의 대립이 심화되고 불평등한 사회가 되어 깊이 별이 들어있으므로 이 별을 고쳐서 후천개벽 시대에 맞는 원만평등한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인과의 이치에 바탕한 사요를 제정하여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사요는 일원의 진리에 근원해서 강약을 진화시켜 후천의 대평등사회를 건설하는 묘방이라 생각할 수 있다. 사요를 실천하는 바탕에는 모두가 사은의 무궁한 은혜를 입고 사는 한 포태의 한 형제라는 대윤기가 전제되어 있고 또한 이의 실천을 위해서는 삼학의 숙련된 인격이 필요해진다. 각자가 삼학으로써 인격을 향상시키고 사은의 윤기에 바탕해서 사요를 실천하고 보면 강자는 더욱 영원한 강을 얻고 약자는 강자가 되어 서로가 함께 잘사는 이상의 평등세계가 이루어 질 것이다. 근래에 사회 일각에서 평등을 부르짖는 소리가 대단히 높다. 이는 대단히 좋은 현상이나 그 평등을 이루는 방법에 있어 불생불멸하고 인과가 적실한 성품의 원리에 근원해서 모두가 둘이 아닌 한 형제임을 깨닫는 대윤리관이 확립되고 스스로 자가가 자기를 책임짓는(내가 나의 조물주) 주체적정신이 확립되어 스스로 먼저 주인되어 실천하는 도덕적 정신이 바탕되어야 올바른 수단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히려 강약의 대립을 심화시키고 투쟁을 조장하여 스스로 나를 책임짓지 못하고 타율에 의한 강압적 평등을 선호한다면 이는 진리에 위배되어 더 큰 불평등을 초래하는, 본의와는 다른 엉뚱한 결과가 와질 수 있음을 알아야 되겠다.
우리는 이미 대종사님의 무량한 대법을 알았기 때문에 이 사요의 실천으로써 나도 발전되고 사회를 균등시키는 대공도자가 될 수 있도록 분명한 마음의 표준을 삼아야 될 줄 믿는다.
1. 자력 양성
우리 각자는 일원의 위력을 얻고 체성에 합할 수 있는 진리의 무궁한 자력을 소유하고 있는 부처이다. 그르므로 자력을 양성하는 것은 자기의 보배를 나투어 쓰는 길이요, 자력을 기르지 않는 것은 그 보배를 사장(사장)시킴과 동시에 진리에 배은이 된다 하셨다. 대종사님께서는 남녀노소 선악귀천을 막론하고 어쩔 수 없는 무자력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력을 공부삼아 양성하여 사람으로서 면할 수 없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라 하셨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는 자력과 타력의 두 힘으로 살아가지만 사은의 원만한 타력을 힘입을 수 있는 것은 원만한 자력을 가질 때에 결국 자력이 근본이 된다 하겠다. 내가 나를 멸시할 때에 남도 나를 멸시하는 것이니 사람마다 충분한 자력을 가지게 되면 자연 그만한 권리를 갖게 되고 대우와 인증을 받게 되어 인권이 평등될 것이다. 이러한 자력을 양성함에 있어서 대산 종법사께서는 세가지 방면의 자력을 얻어야 한다 하셨다. 그것은 정신의 자주력이요 육신의 자활력이요 경제의 자립력이다. 이 세 힘을 가질 때 우리는 원만한 자력자가 되어 보은행을 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지니게 된다. 또한 부부간에 있어서도 특히 각자의 자립력을 길러서 사랑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인류 사회에 사람된 가치를 나투는 데에 더욱 유의하도록 당부하시고 부정당한 의뢰를 받아주는 것은 자력을 사멸시키는 길이니 그 의뢰를 받지 말라 하시어 자력양성의 소중함을 깊이 일깨워 주셨으니 우리는 어떤 방면으로든지 자력을 공부삼아 양성하여 큰 보은자가 되도록 노력하고 인권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다.
2. 지자 본위
지자가 우자를 가르치고 이끄는 것은 이치의 당연함이라 하셨다. 그런데 과거 형식적 차별을 세워서 우자가 지자를 다스리던 불합리한 사회 제도도 없지 않았으니 대종사님께서는 종래의 모든 형식적 차별은 없애고 오직 지우의 차별만을 두며 그것은 지자와 우자를 근본적으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우는 데 따라서 지자와 우자의 차별을 둔다 하셨다. 이것은 대단히 혁명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남녀, 족벌, 학벌, 지역, 인종 등의 형식적 차별로 인하여 참다운 지우 차별이 실시되지 못하여 생기는 사회의 폐단은 그 얼마나 많은가, 이 모든 형식적 차별을 타파하고 오직 지우의 차별로써 세상을 고르며 그것도 구하는 데 따라서 지자와 우자가 있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원만 평등한 진리를 깨치신 성자가 아니면 내놓기 어려운 법문이라 느껴진다. 기술은 기술이 나온 분이 가르쳐야 되고, 도덕은 도덕이 높은 분이 스승이 되어야 한다. 이 당연한 말씀이 사회 분야 분야에서 지켜질 때에 이 사회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되고 지식이 평등될 것이다. 권위는 다른 것이 권위가 아니라, 참된 실력이 권위가 되어야 한다. 자력을 양성함에 있어서도 우리는 지자를 선도자로 삼아 배워 나가야 참된 자력양성이 잘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산 종사께서 「최후 승리는 실력이 으뜸이다」하시고 「앞으로는 실력시대가 돌아온다. 실력이 있어야 세상에 서게 된다 」하시는 말씀 등이 다 이 정신을 드러내는 법문이 아닌가 한다. 우리도 모든 형식적 차별에 끌리지 말고 오직 지자를 선도자로 삼아 배워 나가는데 노력하자.
3. 타자녀 교육
세상의 문명은 교육으로써 촉진된다 하셨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기술과 지식이 있다 하여도 교육에 의하여 후대에 전하여지지 못하고 또 더욱 발전되지 못한다면 이 세상의 쇠퇴는 눈에 보이듯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교육이야말로 이 세상을 진보시키는 유일한 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종래에는 사람의 정신이 열리지 못하여 자기 자녀만을 교육하기로 위주하였고, 사회에서도 교육의 기관이 널리 열리고 장학의 기회가 확대되어 많은 사람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상의 문명이 지체되고 그 혜택이 고루 미치지 못하였다. 하시고 이제 세상이 한 집안 되는 열려지는 후천개벽의 좋은 시운을 당해서 우리는 하루속히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여 문명을 촉진시키고 고르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내 자녀, 남의 자녀, 내 나라 남의 나라의 좁은 울을 벗어나 한 울안 한 이치 한 집안 한 권속이라는 너른 일원주의에 입각하여 힘미치는대로 남의 자녀라도 내 자녀와 같이 가르치며 교욱기관에 적극 합력하고 장학제도를 세워서 수많은 사람이 교육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하셨다. 이렇게 되면 자연 교육이 평등되어 이 세상의 문명은 한량없이 진보되고 고르게 퍼져나가 전 인류가 이상의 사회에서 즐기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나 자신부터 나보다 못한 이를 가르치기에 노력함과 동시에 교육의 기관과 장학 사업에 적극 합력하여 문명사회를 이루어 나가야 하겠다.
4. 공도자 숭배
이 세상은 홀로 살지 못하는 것이요, 서로의 관계 속에서 함께 사는 공동체다. 때문에 나 홀로 잘 살수 없는 것이요, 남이 잘 살 때 나도 잘살아질 수 있는 것이니 이 둘 아닌 이치를 깨쳐서 큰 나를 알아야 된다. 그러므로 큰 나를 찾아서 크게 사시는 분들이 공도자이고 이러한 공도자가 많이 나올 때 이 세상의 생활은 자연 골라질 것이다. 공도자가 많이 나오기로 하면 공도를 위하여 노력하는 분들을 사회에서 숭배하고 응분의 대우를 해주며 높이 드러내야 할 것이니, 본인은 대우를 원하거나 상없이 한다 하여도 사회에서 그 분들을 받들 때, 자연 사회를 위하는 공도자가 많이 나올 것이다. 우리는 공도를 위하여 일하는 것을 의무로 알고 깨친 마음으로 널리 활동하여 모든 사람의 생활을 골라주는 데에 노력해야 되겠다. 앞으로는 활불의 시대라 부처가 다른 분이 아니라 공도자가 바로 활불이라 하셨다.
5. 결 어
사요는 대공도주의에 바탕한 평등 세계 건설의 묘법이므로 약자가 강자되는 것은 자력 양성 지자 본위요, 강자가 약자를 이끄는 것은 타자녀교육 공도자 숭배니 자타없는 자리에서 강약이 상호 진화하여 이 상의 전반세계가 이루어지도록 우리는 각자의 생활에서 먼저 실천하고 사회 전반이 사요의 정신에 의해 움직이도록 합력해 나가기를 염원한다.